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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론] Hilbert, "So führt BERNOULLI aus" (1900)
    독일어 2020. 8. 7. 22:13

    "요한 베르누이가 제시했던 최단시간 강하 곡선 문제 하나만 떠올려 봅시다. 경험으로 증명된 바이며 베르누이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면서 설명하기도 했듯이고상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학문의 증진에 힘을 쏟게 하는 방법으로는 그들에게 어려우면서도 유익한 과제를 제시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베르누이 또한 앞서 그와 같은 일을 했던 메르센(Mersenne)과 파스칼(Pascal), 페르마(Fermat)와 비비아니(Viviani)를 비롯한 선배들의 모범을 따라, 자기 시대의 걸출한 분석가들 앞에 시금석과 같은 과제 하나를 제시하여 자신들의 방법론이 탁월한지를 스스로 검증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게 하였으니, 그때 그는 마땅히 수학계의 은인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도 좋았을 것입니다."

     

    "Ich erinnere nur an das von JOHANN BERNOULLI gestellte Problem der Linie des schnellsten Falles. Die Erfahrung zeigte, so führt BERNOULLI in der öffentlichen Ankündigung dieses Problems aus, daß edle Geister zur Arbeit an der Vermehrung des Wissens durch nichts mehr angetrieben werden, als wenn man ihnen schwierige und zugleich nützliche Aufgaben vorlege, und so hoffe er, sich den Dank der mathematischen Welt zu verdienen, wenn er nach dem Beispiele von Männern, wie MERSENNE, PASCAL, FERMAT, VIVIANI und anderen, welche vor ihm dasselbe taten, den ausgezeichneten Analysten seiner Zeit eine Aufgabe vorlege, damit sie daran wie an einem Prüfsteine die Güte ihrer Methoden beurteilen und ihre Kräfte messen könnten."

     

    ― 다비드 힐베르트, 〈수학 문제들〉(Mathematische Probleme), 1900; 독일어 원문을 우리말로 번역함.

     

     

    지금으로부터 323년 전, 1월 26일, 요한 베르누이는 최단시간 강하 곡선 문제를 제기하면서, 6개월 이내에 문제를 풀이할 것을 요청한다. 아이작 뉴턴이 그의 도전을 알게 된 것은 1월 29일 오후 4시였고, 같은 날 밤 잠이 들기 전 문제를 해결한다. (출처: http://bit.ly/2jjD2kW)

     

     

    지난 7월 31일에 이 블로그에 남긴 글 〈Wir müssen wissen, wir werden wissen〉에서 나는 힐베르트의 1900년 담화문  〈수학 문제들〉의 배경을 일부 해설했다. 이어서 8월 1일에 쓴 글 〈독일어의 현재 완료와 단순 과거, 과거분사의 형용사화〉에도 그 담화문의 일부를 인용하고 번역했다. 그 글에서 인용했던 독일어 원문의 마지막 문장이 바로 위에 인용한 첫 번째 독일어 문장이기도 하다.

     

    앞서 설명했듯이, 첫 번째 문장은 '상기시키다'라는 뜻의 동사 "(ich) erinnere"를 사용한 현재 시제 문장이다. 또 독일어에서 과거분사 구문을 형용사처럼 사용하는 용법을 이해하면 "요한 베르누이가 제시했던 그 문제"라는 뜻의 명사구 "das von JOHANN BERNOULLI gestellte Problem"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문장을 해석함에 있어 더 어려울 것이 없다.

     

    반면 두 번째 문장은 훨씬 더 복잡하다. 위의 인용문에서 첫 번째 문장을 제외한 나머지 줄 전체가 두 번째 문장에 속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두 번째 문장을 집중적으로 해석해 보자.

     

     

    V2 어순에 따른 독일어 주문장 찾기

     

    독일어 원문을 잘 분석해 보면, 실제로 이 문장은 크게 세 개의 문장이 결합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문장의 구성 요소 중 동사를 포함하는 것을 (節, clause)이라고 하는데, 그 중 분리했을 때 하나의 완전한 문장이 되는 것을 독립절(independent clause) 또는 주문장(Hauptsatz)이라고 한다. 주문장에는 반드시 한정 동사(finite verb)가 하나 있는데, 주어의 성과 수와 인칭에 따라 직접 변화하는 부분을 이른다. 영어와 달리 V2 어순(V2-Stellung)을 가진 독일어에서 주문장의 한정 동사는 반드시 문장 구성 요소의 두 번째 자리에 온다는 점에 주목하면, 위 문장은 다음과 같이 세 개의 주문장을 포함하고 있다.

     

     

    "Die Erfahrung zeigte, daß ……."

    (경험으로 증명된 바……입니다.)

     

    "…, so führt BERNOULLI in der öffentlichen Ankündigung dieses Problems aus."

    (베르누이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면서 그렇게 설명하였듯이, )

     

    "und so hoffe er, sich den Dank der mathematischen Welt zu verdienen, wenn ……."

    (그렇기에, …할 때, 베르누이 또한 마땅히 수학계의 은인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도 좋았을 것입니다.)

     

     

    첫 번째 부분의 주어는 '경험'을 뜻하는 "die Erfahrung"이다. 오직 첫 번째 부분만이 영어처럼 (주어)-(동사)-(나머지 문장 성분) 어순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의 주어는 "Bernoulli"(베르누이)이며, 세 번째 주어는 앞의 주어와 같은 것을 지칭하는 남성 대명사 "er"이다. 두 번째 부분과 세 번째 부분의 경우 "so"라는 부사가 문장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며, 주어는 세 번째 자리에 위치한다. 부사인 "so"는 이어지는 문장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을 앞의 문장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문장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독일어의 접속부사(Konjunktionaladverb: 독일어판 위키백과 참조)라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한정 동사가 문장 구성 요소의 두 번째 자리에 온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첫 번째 자리에서 쫓겨난 주어는 문장의 두 번째가 아니라 세 번째 자리로 가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징을 두고 독일어는 V2 어순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정 동사가 두 번째 자리를 벗어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평서문이 아니고, 그 위치에 따라 의문문이 되기도 하고 종속절이 되기도 한다.

     

    영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게르만어파 언어에서 V2 어순이 지배적이다. 반면 영어에서는 SVO 어순이 더 지배적이다. 영어에서도 V2 어순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영어에서 접속부사(Conjunctive adverb: 영어판 위키백과 참조)를 쓴다고 해서 주어를 다른 자리로 옮길 필요는 없다.

     

     

    2020.08.08. 아침

     

     

    첫 번째 주문장의 해석과 번역

     

    첫 번째 주문장의 한정 동사는 '보이다, 증명하다'를 뜻하는 독일어의 동사 'zeigen'의 3인칭 과거형 'zeigte'이다. 어떤 사실이 경험적으로 충분히 일반화될 수 있음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원문과 마찬가지로 '경험'(die Erfahrung)을 주어 자리에 놓아 "경험은 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에서 '경험'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주어 자리에 놓는 것은 아직 자연스럽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증명된 사실을 주어 자리에 놓아 일종의 수동태 문장 "경험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이러한 개념도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내게는 일종의 중언처럼 느껴진다. 한국어에서는 '입니다'라고 단언을 하기만 해도 이미 증명된 사실을 충분히 나타내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 주문장을 "경험에 따르면 입니다"와 같은 형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항상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zeigte'의 의미를 분명하게 강조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번역도 충분히 좋다고 생각한다. "경험으로 증명된 바입니다."

     

    첫 번째 주문장과 그에 딸린 부문장 전체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Die Erfahrung zeigtedaß edle Geister zur Arbeit an der Vermehrung des Wissens durch nichts mehr angetrieben werdenals wenn man ihnen schwierige und zugleich nützliche Aufgaben vorlege."
    경험으로 증명된 바,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학문의 증진에 힘을 쏟게 하는 방법으로는 그들에게 어려우면서도 유익한 과제를 제시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daß" 이하의 종속절(embedded clause)은 전체가 언급절(argument clause)이면서 다시 "wenn" 이하의 조건절(predicative clause)을 부문장(Nebensatz)으로 포함하고 있다.

     

    보통 영어나 독일어를 번역할 때, 조건절이 포함된 문장은 조건절을 먼저 해석하게 된다. 한국어에서는 대게 조건절이 먼저 오기 때문이다. 위의 조건절도 그런 방식으로 번역할 수 있다.

     

     

    "…, wenn man ihnen schwierige und zugleich nützliche Aufgaben vorlege."

    (그들에게 어려우면서도 유익한 과제를 제시했을 때, ….)

     

     

    위와 같이 독일어에서는 특정되지 않은 '누군가'를 지칭하는 주어 "man"이 자주 사용되며, 3인칭 단수로 취급된다. 한국어에서는 문맥에 따라 선택적으로 주어를 생략할 수 있으며, 위와 같이 주어에 큰 의미가 없는 경우 생략해도 무방하다.

     

    "zugleich"는 영어의 'at the same time'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schwierige und zugleich nützliche'를 직역하면 '어려운, 동시에 유익한'이 된다. 영어의 영향으로 한국어에서도 이런 식의 표현이 늘고 있으나, 이는 한국어의 장점인 풍부한 어미 활용 기능을 경시하는 것이다. 나는 '어려우면서도 유익한'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위 부문장에서 "(man) vorlege" '제시하다, 제출하다' 뜻하는 분리동사 "vorlegen"접속법 1식 형태이고, 부문장의 마지막 구성 요소가 된다. 이 경우 접속법 1식을 쓴 이유는 명백히 화자가 말하는 것이 가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부문장을 독립된 직설법 문장으로 고쳐서 쓴다면 분리동사의 기본동사 "(man) legt"가 문장의 두 번째 자리에, 분리전철인 "vor"가 마지막 자리에 올 것이다.

     

     

    "Man legt ihnen schwierige und zugleich nützliche Aufgaben vor."

    (They are presented difficult and at the same time useful tasks.)

     

     

    독일어의 형식적인 주어 "man"은 영어의 "one"으로도 번역하기가 마땅하지 않을 때가 많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여 영문으로 번역할 경우, 형식적인 주어조차 필요하지 않도록 아예 수동태 문장으로 바뀐 결과를 얻었다. 

     

    조건절 앞은 수동태 절이다. 수동태 절에서 "nichts mehr"는 뒤의 "als"와 이어지는 구문으로, 영어로는 "nothing more  than"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구문은 한국어로 옮기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에, 우선 수동태 절에서 "nichts mehr"를 제외하고 해석을 해보자.

     

     

    "Edle Geister werden zur Arbeit an der Vermehrung des Wissens durch   angetrieben."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로 인해 학문의 증진을 위해 일을 하고 싶게 됩니다.)

     

     

    수동태 구문인 "(sie) werden angetrieben"을 직역하면 "추동되다"가 되지만, 한국어에서는 그와 같이 동사를 수동형으로 쓰는 것이 어색한 편이다. 그나마 "antrieben"과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는 한국어 동사 "추동하다"도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고, 어떤 식으로 써도 어색하다. 실제 번역에서는 그런 단어가 필요하지 않은데, 한국어에서는 사역이나 수동의 의미를 나타내는 방법은 동사의 의미와는 거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 하도록""… 하게"와 같은 어미를 활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즉, 사역의 의미는 "하도록 하다"(antrieben)로, 수동의 의미는 "하게 되다"(werden angetrieben)로 나타내면 충분한 것이다.

     

    다만 "일을 하게 되다"만으로는 "(sie) werden zur Arbeit angetrieben"의 의미를 모두 표현하지는 못한다. 수동의 의미만을 번역한 것이고 "antrieben"의 의미는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antrieben"의 의미를 나름대로 살리려면, 한국어를 조금 더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야 한다. "일을 하도록 추동한다"(trieben zur Arbeit an)는 것은, "일을 하고 싶게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trieben zu …  an""…를 하고 싶게 만들다"로, "(sie) werden zu … angetrieben""…를 하고 싶게 되다"로 번역할 수 있다.

     

    "durch nichts mehr als "를 제외한 상태로 위의 두 문장을 결합하면 다음과 같다.

     

     

    "Edle Geister werden zur Arbeit an der Vermehrung des Wissens angetriebenwenn man ihnen schwierige und zugleich nützliche Aufgaben vorlege."
    그들에게 어려우면서도 유용한 문제를 제시했을 때,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학문의 증진을 위해 일을 하고 싶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어로는 조건절이 먼저 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위의 독일어 문장은 원래 형태에 비해 더 어색한 편인데, 수동태 구문의 행위자가 명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경우에 "durch nichts mehr, als " 구문을 사용하면 조건절 전체를 수동태 구문의 행위자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Edle Geister werden zur Arbeit an der Vermehrung des Wissens durch nichts mehr angetriebenals wenn man ihnen schwierige und zugleich nützliche Aufgaben vorlege."
    "Noble spirits are no longer driven to work on increasing knowledge than when they are presented with difficult and at the same time useful tasks."

    ① 그들에게 어려우면서도 유용한 문제를 제시하는 만큼,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들로 하여금 학문의 발전을 위해 힘을 쏟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②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학문의 발전을 위해 힘을 쏟게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어려우면서도 유용한 문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③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학문의 증진에 힘을 쏟게 하는 방법으로는 그들에게 어려우면서도 유용한 문제를 제시하는 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위의 독일어 문장은 세 가지 방식으로 번역할 수 있다. 첫 번째 방식은 "(B) durch nichts mehr, als (A)" 구문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서 "(A)만큼 (B) 하는 것이 없다"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 경우 독일어 문장에서 뒤에 오는 조건절이 한국어 문장에서는 먼저 해석되어야 한다.

     

    두 번째 방식과 세 번째 방식은 원래 구문의 의미를 다각도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A)만큼 (B) 하는 것이 없다"라는 말은 "(B)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A)이다"와 같은 뜻인데,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두 번째 방식이다. 이때 (B)-(A)로 의미 전달의 순서가 바뀌었다.

     

    다시 독일어 원문 "(B) durch nichts mehr, als (A)"의 의미를 살리고자 한다면, "(B) 하는 방법으로는 (A)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이 세 번째 방식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B) durch (A)"를 번역할 때 수동태라는 문장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의미 전달의 순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할 때는 수동태 문장을 항상 "(A)에 의해 (B)가 된다"라는 순서로 해석하도록 배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B)가 되는 것은 (A)에 의함이다", "(B)를 하기 위해 (A)를 통한다", "(B)는 (A)가 한다"와 같은 순서로도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어나 독일어와 달리 한국어에는 정형화된 수동태 문장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를 바꾸어 말하면 수동태 문장을 번역하는 방법이 무한히 많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독일어와 한국어에서 의미가 전달되는 전체적인 순서를 똑같이 (B)-(A)로 유지하고자 한다면, 두 번째 방식이나 세 번째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두 번째 방식에서는 연결하는 구문이 굉장히 단순화되어 있어서 거의 읽거나 듣는 순서 그대로 해석이 된다. 통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와 같이 의미 전달의 순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기술이 굉장히 요긴할 것이다. 의미 전달의 순서를 바꾸지 않으면서 문장을 해석할 수 있게 되면 글을 읽는 속도도 훨씬 빨라진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영어를 공부하면서 이러한 기술을 익혔는데, 독일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세 가지 방식 모두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데, 나는 세 번째 방식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B)-(A)라는 의미 전달의 순서를 유지하면서도 "nichts mehr, als "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 "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 번역했기 때문이다. 각 문장 요소의 원래 의미를 정확하게 보존하면서도 전체적인 의미 전달의 순서까지 비슷하게 유지하는 것은 대부분의 번역 사례에서는 추구하기 힘들거나 불가능한 목표이다.

     

    첫 번째 주문장의 경우 문장의 전체적인 구조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나머지 문제들은 조금 더 세부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다.

     

    앞서 "(sie) werden zur Arbeit angetrieben"는 수동의 의미를 살려서 "일을 하고 싶게 된다"로 번역했는데, "durch "를 통해 표시되는 수동태 문장의 행위자를 함께 번역하면 "그들은 에 의해 일을 하고 싶게 된다"라고 쓸 수 있다. 하지만 행위자가 명확하다면 오히려 수동태를 쓰지 않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즉, "…는 그들이 일을 하고 싶게 한다", "그들이 일을 하고 싶게 하는 것은 …이다" 등의 표현이 가능하다.

     

    최종적으로 나는 "그들이 학문의 증진에 힘을 쏟게 하는 방법으로는 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는 형태로 번역했다. '학문의 발전'을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를 위해 일을 하다'라는 것보다 '…에 힘을 쏟다'가 더 자연스럽다.

     

    한편, "Edle Geister" 역시 '고상한 정신들'이라고 하지 않고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들"이라고 번역했다. 아직도 한국어에서는 추상적인 개념을 직접적인 행위자로 취급하는 것이 낯설다. 원문에는 없더라도 행위자를 나타내는 더 구체적인 단어를 넣고, 추상적인 개념은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항상 더 자연스럽다.

     

     

    2020.08.08. 저녁.

     

     

    두 번째 주문장의 해석과 번역

     

    앞서 설명했듯이, 두 번째 주문장의 주어는 "Bernoulli"(베르누이)이고, 이것이 문장 요소의 세 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접속부사 "so"가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V2 어순을 가지는 독일어의 주문장에서는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항상 한정 동사여야 한다. 이 경우에는 '(er) führt'가 바로 그 한정 동사이다. 또한 이 문장의 마지막 단어는 'aus'인데, 이 단어는 문법적으로 'ausführen'이라는 분리동사의 분리전철이다.

     

    분리동사의 기본동사는 늘 주문장의 두 번째 자리에 오고, 분리전철은 늘 마지막 자리에 온다. 이것은 마치 조동사가 존재하는 문장에서 조동사가 두 번째 자리에 오고, 조동사에 딸린 동사가 마지막 자리에 오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분리동사가 조동사를 따르고 있으면, 기본동사가 'führen'과 같은 동사원형 형태를 취하고 분리전철 'aus'보다 더 뒤로 간다. 그렇게 해서 'ausführen'과 같은 형태가 만들어지는데, 독일어 문법에서는 이것을 분리동사의 동사원형 형태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실제로 분리동사를 동사원형 형태로 써야 하는 경우는 그것뿐이다. 

     

    기본동사인 'führen'은 '이끌다'라는 뜻의 타동사이며 영어로는 'to lead, to drive' 등으로 풀이된다. 반면 분리동사인 'ausführen'은 '실행하다' 또는 '설명하다'를 뜻하는 타동사이다. 분리전철 'aus'의 존재로 인해 분리동사는 기본동사와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만약 분리동사의 용법과 의미가 기본동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그리고 독일어의 V2 어순으로 보아 "Bernoulli"(베르누이)가 분리동사 'ausführen'의 주어여야 한다는 점이 명확하지 않았다면, 나는 "Bernoulli"(베르누이)를 그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인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두 번째 절이 첫 번째 독립절이 끝나기 전에 삽입되어 있어서, "die Erfahrung"이 두 주문장의 공통 주어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나는 극심하게 혼란에 빠졌다. "Bernoulli"(베르누이)는 이 문장의 목적어이고 진짜 주어는 첫 번째 문장의 주어인 "die Erfahrung"과 같아서 생략된 것이 아닐까? 인칭으로는 동사의 주어가 둘 중 어느 것인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동사의 의미를 바탕으로 그 주어가 어느 것이 되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동사조차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의 의미로 명확하게 결정할 수 없었다. 분리동사 'ausführen'은 때로 그 기본동사인 'führen'과 같이 영어의 'to lead'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 같기도 했다.

     

    이와 같이, 원래 문장의 주어는 사실 목적어이고, 그 대신 앞의 문장의 주어가 뒤의 문장에서도 주어 역할을 하고, 분리동사의 의미가 기본동사와 같다는 세 가지 틀린 가정을 동시에 적용하면,

     

     

    "Die Erfahrung führt Bernoulli in der öffentlichen Ankündigung dieses Problems."

    (그 경험은 베르누이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도록 이끈다.)

     

    [주의: 위 문장은 힐베르트가 작성한 원래 문장과 닮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라는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도출된다. 독일어에서 V2 어순이 전적으로 엄격하게 지켜진다는 것만 믿어도 사실 이러한 고민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어쨌든 나는 초기에 이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가정을 차례대로 포기함으로써 바른 길로 나아갔다.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는 틀린 가정을 세 가지 세워야 했지만, 바른 길로 나아갈 때는 옳은 가정을 두 가지만 세우는 것으로 충분했다. 첫째, V2 어순을 철저하게 신뢰한다. 접속부사 "so"는 두 번째 주문장의 첫 번째 구성 요소로서 결코 생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동사의 주어 역할을 하는 "Bernoulli"(베르누이)는 문장의 세 번째 자리에 위치한다. 이에 따라 두 번째 주문장의 주어는 명확하고, 첫 번째 주문장의 주어를 빌리거나 하는 일도 없다. 둘째, 분리동사는 그 기본동사와는 의미와 용례가 다른 새로운 단어이다. 이 문장에서 'ausführen'는 직접적인 목적어가 없이 'führen in + (여격) + aus'와 같은 형태로 쓰였으니, 이러한 용례가 가능한 의미로만 번역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올바른 가정을 세우기는 했지만, 분리동사의 정확한 의미를 결정하는 과정도 쉽지가 않았다. 'ausführen'이 사용된 대부분의 용례는 직접목적어를 'führen + (대격) + aus'으로 명시하고 있고, 전치사와 함께 'führen in + (여격) + aus'으로 표시하는 용례는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기본동사를 'A를 B라는 결과로 이끈다'라는 의미로 'führen + (대격 A) + in + (여격 B)'와 같이 쓰는 용례가 있었고, 목적어 없이 '…로 이어진다'라는 의미로 "(sie) führen in + (여격)" 구문이 쓰이는 예문도 있었다. "Alle Straßen, die in die Stadt führen, sind voller Autos."(도시로 통하는 모든 길이 차로 가득하다.) 원래 문장에서 분리전철 'aus'만 없다면 이 용례를 그대로 적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구체적인 용례를 확인하지 못하고 'ausführen'의 의미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처음에는 '실행하다'로 풀이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하면 해당 문장은 "그러한 이유로 베르누이는 이 문제의 공개적인 발표를 실행합니다"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führen in + (여격) + aus' 형태 대신 다음과 같이 'führen + (대격) + aus'라는 형태를 써야만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BERNOULLI führt die öffentliche Ankündigung dieses Problems aus."

    (베르누이는 이 문제의 공개적인 발표를 실행합니다.)

     

    [주의: 위 문장은 힐베르트가 작성한 원래 문장과 닮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사실 나는 접속부사 "so"의 의미를 거의 무시하고 있었다. 위의 문장에 "so"를 첨가하여 "so führt  BERNOULLI …"와 같은 형태로 바뀌더라도 영어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그러한 이유로" 정도의 의미만 추가되고, 문법적으로는 이 문장을 앞의 문장과 연결하는 기능만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는 "so"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결국 나는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였고,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Die Erfahrung zeigte, so führt BERNOULLI in der öffentlichen Ankündigung dieses Problems aus, daß …."
    "Experience has shownas Bernoulli explains in the public announcement of this problem, that …."
    경험으로 증명된 바, 베르누이 또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면서 설명했듯이, ……입니다.

     

     

    위의 결과를 보고서야 의문이 해소되었다. "ausführen"의 의미는 '설명하다'였고, "daß" 이하의 종속절이 그 목적어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daß" 이하의 종속절은 두 개 절의 공통 목적어 역할을 한다. 힐베르트가 인용하고자 한 내용은 경험으로 증명된 것이기도 하고 베르누이가 설명했던 것이기도 하다. 'so führt BERNOULLI aus' 구문이 첫 번째 주문장의 동사와 목적어 사이에 삽입되어야만 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두 개의 주어, 두 개의 동사, 하나의 목적어를 가진 문장이 탄생했다.

     

    또한 접속부사 "so"는 영어의 "as"와 같은 가능을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했다. "in der öffentlichen Ankündigung dieses Problems"(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면서)라는 구문은 단순한 부사구로서, 'ausführen'과 함께 해석해야만 하는 특별한 용법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갖 복잡한 가정을 세워서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들이 실제로는 가장 평범한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번역기로 해석한 영문을 보고 나니, 이렇게 간단할 수가 없었다. 내가 영어를 처음 배울 때도 이렇게 간단한 문장을 앞에 두고서 극심한 혼란을 느끼며 난관을 거친 끝에야 새로운 언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즐거움을 느꼈을 터, 지금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그때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최종적으로 나는 위의 두 주문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경험으로 증명된 바이며 베르누이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면서 설명하기도 했듯이, ……."

     

     

    2020.08.09. 낮.

     

     

    세 번째 주문장의 해석과 번역

     

    첫 번째 주문장과 두 번째 주문장이 하나의 목적어를 공유하며 결합되어 있었던 것에 비하면, 세 번째 주문장은 완전히 독립된 문장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und so hoffe er, sich den Dank der mathematischen Welt zu verdienen, wenn ……."

    (그렇기에, …할 때, 베르누이 또한  마땅히 수학계의 은인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도 좋았을 것입니다.)

     

     

    위의 문장에서 "(er) hoffe""희망하다, 기대하다"라는 뜻의 동사 "(er) hofft" 접속법 1식 형태이다. 이 경우 접속법 1식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역사적으로 베르누이가 최단시간 강하 곡선 문제를 제시했다는 사실은 알지만, 행동의 동기까지 알 수는 없다. 더욱이 그가 직접 "수학계는 마땅히 나에게 감사를 표시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을 하고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직설법 과거인 "기대했습니다"(er hoffte)가 아니라 가정법에 해당하는 "기대했을 터입니다", "기대했을 법합니다"(er hoffe)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

     

    내가 번역할 때는 원문에 없는 "마땅히"를 추가하고 "기대해도 좋았을 것입니다"로 번역했다. 이는 "und so"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서 "und so"는 이 문장의 서술이 이전에 서술된 것들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는 논리적인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앞서 서술된 바에 따르면, 베르누이가 한 것과 같은 행동은 일반적으로 수학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수학계가 베르누이에게 감사를 표시해야 한다는 것은 베르누이가 가지는 역사적 권리이고, 그의 기대는 허용되어도 좋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und so hoffe er, "라는 짧은 구절을 "그렇기에, 베르누이 또한 …를 기대해도 좋았을 것입니다"로 장황하게 번역했다.

     

    동사 "(sie) hoffen"의 목적어로는 'dass' 절을 쓸 수도 있고 zu-부정형을 쓸 수도 있다. zu-부정형을 쓸 경우 그 의미상의 주어가 전체 문장의 주어와 같고 따로 표시하지 않는다. 이 경우 "zu verdienen" "(er) hoffe"따르는 zu-부정형 동사이고, 영어로는 "to earn"(얻다), "to deserve"(얻을 자격이 있다) 등으로 풀이될 수 있다.

     

    "zu verdienen" "to deserve"라는 의미라면 한국어로 번역하기는 쉽지가 않은데, 한국어에는 "deserve"에 해당하는 단일한 동사가 없기 때문이다. 풀어서 쓰면 "마땅히 …를 얻을 자격이 있다"라는 뜻이 되는데, 그 핵심적인 의미는 부사 "마땅히"나 명사 "자격" 중 하나만 써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 문장의 전체 동사까지 고려한다면 "(sie) hoffen zu verdienen""마땅히 얻기를 기대하다"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면 "얻을 자격이 있기를 기대한다"(hope to deserve)는 한국어로 보나 영어로 보나 너무 어색한 표현이다. 이 구절을 영어로 번역할 때에도 형용사 "rightful"(마땅한 자격에 따른), 또는 부사 "rightfully"(마땅한 자격에 따라)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und so hoffe er, sich den Dank der mathematischen Welt zu verdienen, wenn ……."

    (And therefore, he could rightfully hope to earn the thanks of the mathematical world, when )

     

     

    zu-부정형을 사용할 때 그 의미상의 목적어가 있다면 그보다 앞에 표시되어야 한다. 이것이 영어와는 다른 점이다. 영문의 경우 "to earn"의 의미상의 목적어가 그보다 뒤에 온다. 독일어 원문에서는 "den Dank der mathematischen Welt"(수학계의 감사)"zu verdienen"의 의미상의 목적어이다. 여기에서 "verdienen"은 재귀동사가 아니며, 재귀대명사 "sich"와 함께 쓰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따로 해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국어로 위의 문장을 해석하면 "또한 그렇기에, 베르누이는 마땅히 수학계의 감사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았을 것이다"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 문장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한국어에서 "감사"는 명사로 쓰이기보다는 "감사하다"라는 동사의 어근으로만 인식되는 일이 많고, 그것조차 독립적인 동사가 아니라 인삿말로 쓰이는 관용구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명사처럼 쓰일 때도 "감사드립니다"와 같이 인사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서술된다. "감사를 받는다", "감사를 얻는다"와 같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감사""찬사" 등의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는 방법도 가능하겠으나,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찬사"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칭찬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결국 내가 번역한 방법은 한국어의 고유한 표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한국어에서는 "감사를 받는다"라는 표현은 쓰이지 않지만, "감사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 또는 "이미 감사를 받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은인"이다. 따라서 "수학계의 감사를 받는다"라는 말은 "수학계의 은인으로 기억된다"로 바꾸어 풀이할 수 있다. 

     

     

    2020.08.14. 새벽.

     

     

    세 번째 주문장에 종속된 부문장들은 길이만 길 뿐 해석하기에 어려울 것이 없다. 우선 전체 문장에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부사구를 따로 해석할 수 있다.

     

     

    "nach dem Beispiele von Männern, wie MERSENNE, PASCAL, FERMAT, VIVIANI und anderen, welche vor ihm dasselbe taten"
    "following the example of men like Mersenne, Pascal, Fermat, Viviani and others who did the same before him"
    앞서 그와 같은 일을 했던 메르센과 파스칼, 페르마와 비비아니를 비롯한 선배들의 모범을 따라

     

     

    "nach"는 여격(dativ) 목적어를 가지는데, 목적어가 장소인 경우 주로 "…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나타내고, 목적어가 특정한 시간인 경우 "…을 한 뒤"나타내는 부사구가 된다.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두 가지 해석 방식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목적어가 장소인 경우 그곳에 도착하게 되는 것은 나중의 일인데, 목적어가 시간인 경우 그 시간이 더 앞선 일이기 때문이다. 위의 예문을 통해 "nach"를 해석하는 다른 방법을 알게 되었다. 위의 예문에서 "nach"목적어는 베르누이보다 앞선 시대의 사람들이기도 하고, 베르누이가 지향하는 선례들이기도 하다. 즉, "nach"목적어는 항상 나보다 앞에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시간적으로는 앞선 사건을 나타내고, 공간적으로는 진행 방향의 앞에 있는 것을 나타내며, 추상적으로는 어떤 지향하는 가치를 나타내며 "를 따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격으로 쓰인 목적어를 주격 형태로 쓰면 "das Beispiel von Männern"이 된다. "(das) Beispiel""예"라는 뜻이고, "von"에 따르는 "(den) Männern""(die) Männer"(남자들)의 여격 형태이다. 하지만 이 명사구를 "남자들의 예"라고만 번역하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단수 형태 "(der) Mann"이 남자를 지칭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어에서 "남자"라는 단어는 독일어의 "(der) Mann"이나 영어의 "man"만큼 광범위하게 쓰이는 단어가 아니며, 명백히 그들의 남성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을 때만 쓰인다. 특별히 그들의 남성성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der) Mann"은 그냥 "사람"으로, "(die) Männer""사람들"로 번역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메르센과 파스칼, 페르마와 비비아니"의 본질적인 공통점은 결코 그들의 남성성에 있지 않다. 그들의 본질적인 공통점은 그들이 수학자라는 점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수학자"라는 번역어를 사용하는 것도 적절할 것이다. 특히 이 문장에서는 그들이 베르누이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으며 베르누이가 한 일과 같은 성격의 일을 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한국어에는 이와 같은 의미를 특별히 강조하면서도 일상 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단어인 "선배"가 있다. "선배"란 시간적으로 앞선 존재이며 동시에 어떤 지향하는 대상이 될 수 있으니, "nach"의 목적어에 대한 번역어로 쓰기에도 매우 적절하다. 이와 비슷한 논리에 의해 "(das) Beispiel" "예", "예시", "선례" 등으로 번역하는 대신 "모범"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부사구를 빼고, 또 "damit" 이하의 절도 빼고 보면 부문장은 다음과 같다.

     

     

    "……, wenn er den ausgezeichneten Analysten seiner Zeit eine Aufgabe vorlege"
    자기 시대의 걸출한 분석가들 앞에 과제 하나를 제시하였을 때

     "when he presented a task to the outstanding analysts of his time"

    "when he layed before the distinguished analysts of his time a task"

     


    분리동사 "vorlegen" 접속법 1식 형태인 "(er) vorlege"가 다시 한 번 쓰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의 조건절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언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베르누이의 생각에 대해서 추측하는 주문장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여기에서도 접속법 1식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나 영어로 번역할 때는 그냥 과거 시제로 처리하면 충분할 것이다.

     

    이 동사는 각각 여격 목적어와 대격 목적어를 가진다. 영어로는  과 같이 "give (B) to (A)", "present (B) to (A)" 형태의 구문을 사용하여 대격 목적어만을 직접 목적어로 번역하고 여격 목적어는 목적보어로 처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경우 독일어의 어순이 (A)-(B)인 반면 영어에서는 (B)-to-(A)가 된다. 영어에서도 "give (A) (B)" 형태의 어순이 가능하나, "give me that"은 자연스러운 반면 "give me it"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러한 어순은 제한적으로만 쓰인다고 하겠다. 더욱이 "present (A) (B)" 형태의 어순은 불가능하다.

     

     는 1902년의 공식적인 영어 번역문에서 채택한 방식이다. 여격 목적어를 부사구로 처리하여 어순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했고, 이에 따라 직접 목적어를 그보다 뒤에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 독일어에서 주문장의 목적어와 부문장을 연결하는 "eine Aufgabe … , damit daran  " 구문을 영어로는 "a task by which "로 번역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앞의 "a task" "using it"(daran)으로 다시 지칭하여 "a task …, so that, using it"과 같이 번역되었을 것이다. 영문 번역자는 이것이 꽤 번거롭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독일어의 "damit"은 영어의 "so that" 구문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damit" 이하의 종속절은 주문장 형태로 바꾸어 쉽게 해석할 수 있다. 다만 "daran wie an einem Prüfsteine"라는 구문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daran"앞서 언급된 것을 부사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영어로는 "on that", "at that" 등으로 풀이된다. 이 경우에는 베르누이가 제시한 "과제"(eine Aufgabe)를 지칭하여 "그것을 통해", "그것을 이용해"(using it) 등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뒤에 이어지는 "wie an einem Prüfsteine"은 영어로는 "as with a touchstone", 한국어로는 "시금석으로 하는 것처럼"으로 풀이된다. 두 가지 부사구를 결합하면 "그것을 시금석으로 삼아"(using it as a touchstone)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 damit sie daran wie an einem Prüfsteine die Güte ihrer Methoden beurteilen und ihre Kräfte messen könnten."
    "……, so that, using it as a touchstone, they can evaluate the quality of their methods and measure their strengths."
    그것을 시금석으로 삼아 자신들의 방법론이 탁월한지를 스스로 검증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게 하였으니……

     

     

    2020.08.15. 새벽.

     

    (2020.08.17. 아침. 위의 부분을 보강함.)

     

     

    위의 두 부문장을 연결하여 원래 형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 wenn er den ausgezeichneten Analysten seiner Zeit eine Aufgabe vorlege, damit sie daran wie an einem Prüfsteine die Güte ihrer Methoden beurteilen und ihre Kräfte messen könnten."
     "……, when he presented a task to the outstanding analysts of his time, so that, using it as a touchstone, they can evaluate the quality of their methods and measure their strengths."

     "……, when he layed before the distinguished analysts of his time a task by which, as a touchstone, they may test the value of their methods and measure their strength."

    자기 시대의 걸출한 분석가들 앞에 과제 하나를 제시하여, 그것을 시금석으로 삼아 자신들의 방법론이 탁월한지를 스스로 검증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게 하였을 때, ……

    자기 시대의 걸출한 분석가들 앞에 시금석과 같은 과제 하나를 제시하여 자신들의 방법론이 탁월한지를 스스로 검증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게 하였을 때, ……

     

     

    앞서 설명한 것과 비슷하게, 두 영어 번역문   의 차이는 대격 목적어 "eine Aufgabe"를 어떻게 처리했느냐는 것이다.   은 내가 자주 쓰는 용법대로 대격 목적어를 문장의 유일한 직접 목적어 "a task"로 번역하여 동사 바로 뒤에 두는 것이다. 이 경우 나머지 문장 성분이 꽤 길기 때문에 "a task by which "와 같은 관계대명사 구문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전체 문장은 "a task …, so that, using it " 구문으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독일어 원문의 문법적 요소를 각각 그대로 번역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반면  는 1902년의 공식적인 영어 번역문에서 채택한 방식이다. 그 번역가는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를 내가 영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고, 따라서 독일어 원문의 문법적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그가 더 선호하는 형태의 영문으로 번역할 수 있었다. 

     

    한국어 번역문 은 독일어 원문에 더 가깝고, 한국어 번역문  는 이를 내가 더 선호하는 형태로 바꾼 것이다. "daran wie an einem Prüfsteine"라는 구문을 영어로 꼭 "using it as a touchstone"이라고 번역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한국어로도 꼭 "그것을 시금석으로 삼아"라고 번역할 필요는 없다. 영어로는 전체 형태를 보존하지 않고 "as a touchstone"만이 번역문에 남았고, 한국어로도 "시금석과 같이"라는 의미만 남겨도 충분하다. 다만 그렇게 할 경우에는 이것을 부사구로 처리하는 것보다는 "과제"를 수식하는 형용사구로 바꾸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원문에서는 뒤의 부문장을 구성하는 부사구로 쓰였지만 한국어 번역문에서는 아예 앞으로 이동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위의 "…, wenn er … volege" 조건절 전체는 "…, when he layed"(… 그가 제시하였을 때,)으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 by laying "(… 제시함으로써, )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1902년 영어 번역문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 조건절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 하였을 때, …""… 함으로써, " 구문이 모두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A) 함으로써, (B)" 구문은 (B)를 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적인 절차가 (A)라는 논리를 전달하는 것인데, (A)라는 행위가 실제로 수행되었음을 알려주는 과거 시제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반대로 "(A) 하였을 때, (B)" 구문은 두 행위가 과거의 어떤 시점에 동시에 수행되었다는 의미는 충분히 전달하지만 두 행위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두 경우 모두 명시되지 않은 의미가 문맥을 통해 분명하게 전달되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번역문을 통해 전체 의미를 명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나는 "(A) 하였으니, 그때 (B)" 구문을 사용하여 세 번쨰 주문장을 번역하였다.

     

     

    "und so hoffe er, sich den Dank der mathematischen Welt zu verdienen, wenn er den ausgezeichneten Analysten seiner Zeit eine Aufgabe vorlege, damit sie daran wie an einem Prüfsteine die Güte ihrer Methoden beurteilen und ihre Kräfte messen könnten."
    "그렇기에, 베르누이는 자기 시대의 걸출한 분석가들 앞에 시금석과 같은 과제 하나를 제시하여 자신들의 방법론이 탁월한지를 스스로 검증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게 하였으니, 그때 그는 마땅히 수학계의 은인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도 좋았을 것입니다."

     

     

    2020.08.19.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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