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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bert, "Wir müssen wissen, wir werden wissen" (1930)독일어 2020. 7. 30. 10:33
"1900년 8월 8일,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수학학회에서 힐베르트는 역사에 길이 남을 강연을 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23개의 미해결 문제를 사람들 앞에 제시하였는데, 이들 중 일부는 수학의 일반 분야에 속하는 문제였고 나머지 대부분은 논리적 기초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힐베르트가 이런 문제들을 제기한 것은 수학계의 관심을 끌어 자신의 연구 계획을 분담, 수행할 학자들을 모집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는 모순 없는 수학체계를 확립하는 대계획에 전세계의 수학자들을 골고루 참여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힐베르트의 야심찬 의도는 그의 묘비에 잘 표현되어 있다."
"Wir müssen wissen — wir werden wissen."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알 것이다.)
― 사이먼 싱,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제4장 〈추상의 세계로〉, 두번째 절 "지식의 기반"; 박병철 옮김.
내 생애 첫 독일어 문장
태어나서 처음 들은 한국어 문장, 또는 영어를 배울 때 처음 배운 문장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몇몇 언어의 경우에는 기억한다. 처음으로 들은 중국어 문장은 "我爱你"(wǒ ài nǐ, 나는 너를 사랑한다)였고,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사촌 누나가 알려준 것이었다. 라틴어 문장 중 내가 기억하기에 가장 처음 알게 된 것은 카이사르의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였다.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 그 다음일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거의 같은 시기에 이원복 선생님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읽고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중 데카르트의 문장은 리처드 파인만의 글 중 《남이야 뭐라 하건!》에 수록된 같은 제목의 글에도 언급되어 있어서, 고등학생 시절 그 책을 읽으며 다시 접하게 되었다.
독일어의 경우에도 내 생애 첫 번째 문장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독일의 위대한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David Hilbert)가 한 말이었다.
인용한 것과 같이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도 그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을 그 책에서 처음 접한 것은 분명하다. 나는 사이먼 싱의 책을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읽었고, 그 내용을 거의 기억할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그 이전에는 수학 대중서를 읽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문장을 그 책에서 읽은 것으로 기억하지는 못한다. 당시에는 독일어라는 언어에 대해 크게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영어의 조동사 'must'나 'will'조차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싶다. (초등학생 무렵의 나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지식은 수학이나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일찍부터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주변의 동급생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수학이나 물리학에 대한 대중적인 책과 꽤 전문적인 책들을 많이 읽었다. 결국은 어떤 책에서 위의 문장을 다시 읽게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문장이니, 사실은 어떤 책에서 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읽은 존 배로의 《수학, 천상의 학문》, 제3장, 세번째 절 '힐베르트의 계획'에도 이 문장이 인용되는데, 정확하게 인용된 것은 아니다.
그때는 위의 독일어 문장을 독일어 문장으로서 인식하면서 읽었고, 소리를 내어 읽었고, 기억하게 되었다. 발음하는 방법은 몰랐다. 'w'는 영어의 발음 방법대로 읽었다. 'wir'는 '위어'로, 'wissen'은 '위센'으로 읽었다. 독일어가 영어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볼 수도 있었다. 'müssen'은 틀림없이 영어의 'must'에 대응하는 것이었고, 'werden'은 'will'과 비슷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wir'는 'we'였다. 이 문장의 박자감도 너무 좋았다. "위어 뮈센 위센, 위어 웨덴 위센." 독일어의 'w'를 영어의 'v'와 비슷하게 발음한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 발음을 한글 자음 'ㅂ'으로 표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차라리 '부-'로 표시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뷔어 뮈센 뷔센, 뷔어 붸덴 뷔센."
우리가 알지 못할 것(ignorabimus) 따위는 없다
내가 이 문장을 두 번째로 다시 읽게 된 글에서는 이 문장과 함께 이 문장이 사용된 대략적인 맥락도 기술되어 있었다. 힐베르트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장이 상징하는 비관적인 태도를 단호하게 배척하고자 했던 것이다.
"Ignoramus et ignorabimus."
(우리는 알지 못하며, 우리는 알지 못할 것이다.)
이 라틴어 문장은 19세기 독일의 생리학자 에밀 듀 보아레이몬(Emil du Bois-Reymond)이 1872년 강연 〈자연과학의 한계에 대하여〉(Über die Grenzen des Naturerkennens)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에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를 요약하고 있다. 내가 보아레이몬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당시에 읽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번에 조사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이름이다. 하지만 위의 라틴어 문장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위의 문장에서 두 가지 다른 형식으로 사용된 라틴어 동사는 영어의 형용사 'ignorant'(알지 못한다)와 명사 'ignorance'(알지 못함)의 기원이 된 것이라 기억하기도 쉬웠다.
라틴어에서는 동사의 현재형과 미래형이 주어의 인칭에 따라서 변한다. 기본형인 'ignoro'는 1인칭 단수 현재형으로 '나는 알지 못한다'이며, 'ignoramus'는 1인칭 복수 현재형으로 '우리는 알지 못한다'이다. 'ignorabimus'는 '1인칭 복수 미래형으로 '우리는 알지 못할 것이다'가 된다. 라틴어에서는 늘 주어의 인칭과 시제가 동사의 형태를 결정하기 때문에 주어를 꼭 명시하지 않아도 주어를 알 수 있고, 영어의 'will'이나 독일어의 'werden'과 같은 조동사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현대의 로망스어군 언어들도 이와 비슷한 동사 변화 체계를 가지고 있다.
위의 라틴어 문장을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Wir wissen nicht, und wir werden nicht wissen."
"We do not know, and we will not know."
이와 같이 다른 언어로는 많은 단어를 써야 전달할 수 있는 의미를 라틴어로는 압축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라틴어가 가진 고유한 압축성 덕분에 반박하는 것은 오히려 편했다. 보아레이몬이라는 독일의 생리학자가 라틴어로 쓴 것을 힐베르트는 독일어로 반박했다. 영어와 달리 독일어 문장을 쓸 때는 모든 명사가 대문자로 시작하는데, 따라서 아래의 독일어 문장에서 'Ignorabimus'는 하나의 명사처럼 쓰였음을 알 수 있다.
"Du kannst sie durch reines Denken finden; denn in der Mathematik gibt es kein Ignorabimus."
"You can find it by pure reason, for in mathematics there is no igmorabimus."
(그대는 순수하게 생각만으로 답을 찾을 수 있거니와, 수학에는 우리가 알지 못할 것 따위는 없으니 말이다.)
"Für uns gibt es kein Ignorabimus."
"Fur us there is no ignorabimus."
(우리에게 이그노라비무스 따위는 없다.)
힐베르트의 확신, 괴델의 불신
위의 두 예제에서 나는 'ignorabimus'를 두 가지 방식으로 번역했는데, 한 번은 '우리가 알지 못할 것'으로 번역했고, 다른 한 번은 '이그노라비무스'라고 번역했다. 들을 때는 두 번째 방식으로 듣고 이해할 때는 첫 번째 방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앞의 것은 1900년 힐베르트가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수학학회에서 강연한 〈수학 문제들〉(Mathematische Probleme)에 등장한다. 나는 영어 번역본 〈Mathematical Problems〉을 참고하였다. 뒤의 것은 1930년 9월 8일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에서 개최된 독일 과학자·물리학자 모임에서 연설한 〈Naturerkennen und Logik〉에 등장한다. 바로 그 1930년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힐베르트는, "어리석은 이그노라비무스 따위를 대신하여"(Statt des törichten Ignorabimus),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알 것이다"(Wir müssen wissen, wir werden wissen)가 우리의 새로운 구호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때로 우리는 충분한 가정을 세우지 않거나 문제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상태에서 그 해답을 추구하기도 하며, 그러한 이유로 풀이에 실패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난제가 생긴다. 주어진 가정을 바탕으로, 또는 우리가 이해한 방식으로 풀이를 하는 것이 원래부터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 불가능성을 보일 수 있는가? 이와 같이 불가능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습관은 고대의 수학자들이 우리에게 전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직각이등변삼각형의 빗변의 길이를 다른 한 변의 길이로 나눈 비를 두 자연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irrational)을 증명했다. 후대의 수학자들은 문제를 풀이하기에 앞서 그 풀이가 가능한지를 먼저 검증하는 것이 통과 의례가 되었다. 그러한 방식으로 평행선 공준의 증명 문제, 원적 문제, 오차 방정식의 해를 거듭제곱근 몇 개의 조합으로 나타내는 것과 같은 오래된 난제들이, 출제자가 의도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방식이지만 어쨌든 만족스럽고 엄밀하게 해결되었다. 다른 철학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와 같은 중요한 사실을 바탕으로, 수학자들은 모두가 공유하지만 아무도 증명할 수는 없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모든 수학 문제는 출제자의 의도에 맞는 정확한 풀이를 찾아내거나, 아니면 풀이가 본디 불가능하며 그 어떤 시도도 성공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모든 수학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확신하는 것은 수학자들에게 있어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들리는 내면의 음성이 있으니, 그것은 여기에 문제가 있노라, 그 해답을 찾으라 하고 말한다. 그대는 순수하게 생각만으로 답을 찾을 수 있거니와, 수학에는 우리가 알지 못할 것(ignorabimus) 따위는 없으니 말이다."
― 다비드 힐베르트, 〈수학 문제들〉(Mathematische Probleme), 1900; 영어 번역본을 참고하여 우리말로 번역함.
물론 위와 같은 확신이 꼭 옳은 것은 아니었다. 1931년,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이라는 약관 25세의 젊은 독일인 논리학자는 자신의 논문에서 두 가지의 명제를 증명했는데, 이것들은 오늘날 '괴델의 불완정성 원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힐베르트의 신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의 정리는 다음과 같은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공리로부터 출발한 모순 없는 이론적 체계에는 증명할 수도 없고 반증도 할 수 없는 정리가 반드시 존재한다."
"공리로부터 출발한 이론의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어서 1963년에는 스탠퍼드 대학의 수학자였던 29세의 폴 코헨(Paul Cohen)은 특정한 질문이 증명 및 반증 불가능한지를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 방법을 적용하여, 1900년 강연 〈수학 문제들〉을 통해 힐베르트가 제기했던 23개의 '힐베르트 문제들' 중 하나인 '연속성 가설'이 증명 및 반증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괴델은 힐베르트가 틀렸고, 보아레이몬이 옳았음을 증명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아레이몬의 'ignorabimus'는 단순한 염세주의에 불과하며, 인류의 학문적 진보에 기여한 바가 아무것도 없다. 반면, 힐베르트는 수학적으로 잘 정의된 구체적인 질문을 제시하였다. "모순이 없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학적 체계를 완성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리고 과거의 수학 문제들이 그런 과정을 거쳤던 것처럼, 괴델이 증명한 '불완정성 원리'도 힐베르트의 질문에 대한 만족스럽고 엄밀한 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답안이 출제자가 기대한 것과 달랐을 뿐, 그 답안은 인간 정신의 지평을 크게 넓히는 것이었다.
2020.07.31.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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