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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한 번 새로운 언어를 경험하는 것에 대하여
    외국어 학습 2020. 7. 26. 04:13

    내가 독일어를 배우기로 한 언어학적인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 지난 7월 21일 내가 이 블로그에 처음 작성한 글이 되었다. 독일어를 비롯한 서게르만어군 언어를 공부하면 영어의 기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글의 요지였다. 하지만 내가 독일어를 배우기로 한 모든 이유를 그 글에서 설명하지는 못했다. 〈언어학적인 이유〉 이외에, 〈교육학적인 이유〉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학창 시절의 영어

     

    내가 영어를 처음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다.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영어 수업을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수업의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거의 도움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학습지 선생님을 모셔서 영어 공부를 하려고도 했었다. 부모님은 자녀 교육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그렇게 했고,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내가 그 학습지 수업에서 기억이 나는 장면은 딱 한 가지다. 간단한 단어 받아쓰기를 했는데, 나는 'swim'이라는 단어의 철자를 알지 못했다. 발음도 알고 뜻도 알았는데, 철자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 앞에서 학습지 선생님은 내가 처한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내가 무력하고 멍청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굳이 영어를 그런 식으로 배울 필요가 있었던 것인가 싶다. 단어의 철자를 익히는 것이 영어 교육에서 그렇게 중요한 목표인가?

     

    나는 지금도 영어 단어의 철자를 잘 모른다. 최근에는 'suggest'라는 단어의 철자를 기억하지 못해서 그것을 'sujest'라고만 적어 놓은 뒤, 결국 단어를 검색해서 철자를 알아낸 적이 있었다. 사실 이 단어는 너무나 기초적인 것이다. 수십년 동안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하거나 쓰던지 거의 항상 내가 애용하던 단어였다. 당연히 'suggest'가 아니라 'sujest'라고 쓴 것을 보면 틀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단어를 직접 보기 전에는 철자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경우가 꽤 많다. 심지어 'discussion'의 철자조차 기억이 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나는 'discussion'이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도 알고 있지만, 어쨌든 철자가 생각이 나지 않으려고 할 때는 절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모두 최근에 대학원 입학 원서를 작성하면서 겪은 일이다. 지금 나는 기본적인 영어 단어의 철자법을 모른다고 해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더 나은 환경의 학원에서 영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영어의 문장을 '다섯 개의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순간부터 내가 배우는 것에 대해 약간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영어 문장의 다섯 형식'이라는 것만 알고 나면 이제 비로소 복잡한 형태의 영어 문장을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논리적인 구조와 연결성과 맥락이 존재하는 영어 문장을 쓰려면, '접속사'를 자유롭게 쓸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능력은 언어 경험을 쌓으면서 감각적으로 터득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나머지 문법 지식은 조금 더 기술적인 것으로서, 처음에는 반복적인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익힐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결국은 실제로 언어를 구사하면서 체화시켜야 한다.

     

    나의 경우 고등학생 무렵까지는 실제로 영어를 구사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다행인지 대학 교육을 받기 시작한 이후에는 거의 모든 영어가 '실제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대학 교육을 받고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영어를 조금 더 편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 머릿속 외국어가 어디에서 오는지

     

    전반적으로 말해서, 나는 내가 어떻게 해서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영어 문법 참고서의 단원들을 구성하는 수많은 지식 체계는 다시 보아도 낯설기만 하다. 지금의 내 머릿속에는 그렇게 많은 영문법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단지 감각적으로 그것들을 구사할 뿐이다. 그렇다면 영어라는 언어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언제 어떻게 해서 내 머릿속의 언어 회로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내가 현재 구사하는 것과 같은 영어 능력을 있게 만든 수많은 '영어 경험'들을 당시에 구체적으로 기록해 두었다면, 그 중 일부만이라도 기록이 남아 있다면, 위와 같은 질문에 답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외국어 교육 방식에 대해 반성할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반면, 나는 학창 시절에 나의 수학적 사고력이 성장하게 된 실제 수학적 탐구와 발견의 순간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둔 바가 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수학 교육에 대한 나의 교육철학을 형성하고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고등학생 무렵부터 지금까지도 수학 교육을 비평하고 개선하는 것은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하지만 이 블로그에서는 수학 교육을 주제로 글을 쓸 계획이 없다. 나의 독일어 학습은 기본적으로 취미일 뿐이고, 이 블로그 또한 독일어 학습과 병행하기 위한 취미 활동으로만 할 계획이다.)

     

    학창 시절 영어를 배울 때는 영어를 배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마땅히 느껴야 할 즐거움과 기쁨, 신비로움을 거의 경험하지도 못했다. 긍정적인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도 도리어 막았다.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꼭 그 시절에 할 필요도 없었던 일들을 강요와 중압감에 의해 억지로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타인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어떨까? 독일어의 구성 요소도 영어와 비슷하다. 대명사, 접속사, 전치사, 조동사가 있다. 대신 괴상한 철자법은 없다. 독일어를 배우다 보면, 내가 영어를 어떤 식으로 배웠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회고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처음 배우면서 으레 느끼게 되는 즐거운 감정과 지적인 성장 과정도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을 터였다. 이번에는, 내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을 보다 꼼꼼하게 기록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2020.07.26.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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