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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젠의 로마사" 제1권과 제5권: 자유 농민의 중요성
    몸젠의 로마사 2020. 9. 1. 03:26

    제1권 인용문: Bd. 1, Buch 1. 제13장

     

    "로마에서는 특히 국가의 중심이 근본적으로 농업인구에 있었다." / "로마 민족처럼 많은 민족 역시 다른 민족을 물리치고 정복했다. 그러나 다른 민족들과 달리 로마인들만이 유일하게 정복 토지를 스스로 땀 흘려 자신들의 토지로 만들었으며, 창으로 얻은 땅을 그들은 쟁기로 다시 한 번 공고히 했다." / "토지를 다스리는 일에서 개인과 국가의 힘이 생겨난다. 이렇게 시민들이 최대한 직접적으로 토지를 소유한 가운데 확고하게 자리잡은 농부들의 공고한 단결에 근거하여 위대한 로마가 이룩되었다."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Römische Geschichte) 제1책(한국어판 제1권), 제13장 〈농업, 상업과 무역〉 첫 번째 절 '농업'

     

    "나중에 나타나는 것처럼 상당 부분 노예 노동에 기초하는 본격적인 대토지 경영은 이 시점의 로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때에는, 마치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듯 상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줌으로써 원로들이 '아버지'라고 불리던 당시의 정의를 끌어들여야 할 것인데, 애초의 토지 소유주는 직접 경영할 수 없는 일부분의 토지 혹은 토지 전체를 작게 나누어 예속민들에게 경작하도록 나누어 주었음이 분명하다." / "로마인들은 국가를 병들게 하는 소작제도를 두지 않았기에 로마의 토지 소유자들은 임차인들과 농민들만큼이나 토지에 붙박여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직접 눈으로 보고 몸소 개입했으며, 제아무리 부유한 로마인일지라도 훌륭한 농업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겼다. 그의 집은 농촌에 있었으며 도시에서는 다만 도시에서의 사무를 처리했는데, 무더운 때에 좀 더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기 위해 마련된 거소가 필요했다." / "주인을 위해 토지를 일구는 노예들은 당연히 자유민 신분의 임차인들에 비해 훨씬 적었다."

     

    ― 위의 책, 같은 장 일곱 번째 절 '대토지 소유'

     

     

    《몸젠의 로마사》 한국어판 제1권과 제5권. 제1권은 원작 제1부 제1책(Bd. 1, Buch 1.) 전체를 번역한 것이고, 2013년 4월 9일 초판 1쇄가 발행되었다. 제5권은 원작 제3부 제4책(Bd. 3, Buch 4.)의 제1장부터 제6장까지를 번역한 것이고, 2020년 7월 9일 초판 1쇄가 발행되었다. 제1권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고, 제5권은 구매하여 소장하고 있다.

     

     

    독서 기록

     

    지금까지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몸젠의 로마사》 다섯 권 중에서 제1권은 그렇게 흥미진진한 부분은 아니다. 나는 아예 제1권을 건너뛰고 제2권부터 읽기 시작했다.

     

    제2권은 두 가지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첫 번째 주제는 왕정, 즉 종신직 공동체 수장 제도를 철폐하면서 로마의 국제(國制)가 크게 바뀐 결과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 주제는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군사적으로 복속시키고 정치적으로 통일한 과정에 대한 것이다. 지난 7월 28일에 이 블로그에 쓴 글 〈"몸젠의 로마사" 제2책 서평〉에 조금 더 자세히 정리하여 설명한 바 있다.

     

    제1권을 읽지 않아서 제2권을 이해하기에 힘든 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제2권을 읽고 변화된 로마의 상황을 알고 나니 나중에 제1권을 읽는 것이 쉬웠다. 로마의 왕정과 공화정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제도가 아니었고, 왕정 제도에 이미 존재했던 로마인들의 관념과 의식이 공화정 제도를 통해 상당수 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공화정 제도를 먼저 이해하고 나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근본적인 요소들을 왕정 제도에서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로마인들이 이탈리아 반도를 복속시킨 과정을 알고 난 후에야, 복속된 민족들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제2권을 먼저 읽지 않았더라면, 제1권을 읽을 때 더 중요한 부분과 덜 중요한 부분을 구분하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책을 읽는 것도 지루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지난 7월 28일에 제2권을 마저 읽었고, 지난 8월 28일에 제1권을 마저 읽었다.

     

    제5권은 지난 7월 9일 목요일 초판 1쇄가 발행되었다고 하는데, 같은 날 이미 우리 동네 대형서점에서 그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책을 구매한 것은 7월 11일 토요일이고 13일 월요일부터 읽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계속해서 제5권을 읽는 중이다.

     

    위에서 인용한 제1권 제13장 〈농업, 상업과 무역〉도 처음에 읽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제5권을 읽다보니 점차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제1권의 배경이 되는 기원전 750년 경부터 기원전 510년 경까지 로마 왕정기의 시점제5권의 배경이 되는 기원전 150년 경 카르타고의 파괴부터 기원전 90년 경 드루수스 개혁 시도까지의 시점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참고로, 《몸젠의 로마사》 제5권의 시대적 배경은 유명한 역사 팟캐스트 진행자인 마이크 덩컨(Mike Duncan)의 책 《폭풍 전의 폭풍: 로마 공화정 몰락의 서막》(The Storm before the Storm)과도 거의 일치한다. 나는 덩컨의 책을 예전에 읽었는데, 생생한 현장감이 넘쳐서 숨가쁘게 읽게 되는 흥미진진한 책이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심오하게 다루는 책이었다. 역사학자인 몸젠의 책에서도 똑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몸젠의 태도는 조금 더 분석적이고 비평적이다. 나는 아직도 《몸젠의 로마사》 제5권을 읽고 있는 중인데, 읽던 책을 마저 읽고 나면 몸젠의 책과 덩컨의 책을 비교해서 서평을 남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덩컨의 책에서 '그라쿠스'로 표기된 이름들은 몸젠의 책에서 '그락쿠스'로 표기되어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나는 앞의 표기법이 더 익숙하게 들리지만 뒤의 표기법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점까지는 자유로운 로마의 농민들이 토지를 직접 소유하였고 그들이 로마의 경제와 군대의 근간이 되었다. 아래에 인용할 제5권 제2장 개혁 움직임과 티베리우스 그락쿠스〉를 위의 인용문과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그러한 상황이 나중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5권 인용문: Bd. 3, Buch 4. 제2장

     

    "더 이상 두려워할 나라가 없어지면 로마는 어떻게 될까라는 카토의 질문에 심오한 뜻이 담겨있다. 이 지점에 로마가 이르렀다."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Römische Geschichte) 제4책(한국어판 제5권), 제2장 개혁 움직임과 티베리우스 그락쿠스 두 번째 절 '부패의 확산'

     

    "과거의 노에 형성은 전쟁 포로와 상속 노예를 통해 이루어졌다면, 대규모 노예경제는, 미합중국의 노예 제도와 완벽히 일치하는바, 조직적으로 자행된 노예사냥에 기초했는데, 이때 노예들의 생명과 출산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노예 활용 방식 때문에 노예 인구는 지속적으로 소멸되었으며, 시장에 새로운 노예를 늘 공급하던 전쟁도 그 부족분을 채워 넣을 수 없었다. 사냥 가능한 사냥감이 있는 지역치고 노예사냥을 면한 곳은 없었다." / "모든 점에서 훨씬 열악한 것은 거대 농장 경영이었다. 흔히 인두로 낙인을 찍은 노예 무리를 풀어 경작하는 방식으로, 노예들은 낮에는 발목에 쇠사슬을 차고 감독관들의 감시 아래 일하고, 밤에는 집단으로 지하 감옥에 감금되었다." / "로마의 노예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흑인 노예들이 겪은 고통은 새 발의 피일 뿐임이 아주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노예들의 처참한 상황 자체가 아니라, 이런 상황이 로마 국가에 초래한 위험들과 이에 대처했던 로마 정부에 집중하고자 한다."

     

    ― 위의 책, 같은 장 일곱 번째 절 '노예제와 그 결과'

     

    "이탈리아 밖의 점령 토지를 분배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지배국가로 군림해야 했고, 주인 이탈리아와 복속된 속주들을 나누는 장벽이 무너지지 말아야 했다. 국가 정책을 무시하지 않으려 하거나 계급 이익을 고려하고자 한다면, 정부에 남은 일은 오직 이탈리아 농민계급의 몰락을 수수방관하는 것뿐이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자본가들은 소농들의 자산을 계속해서 사들였고, 소농들이 팔려고 하지 않을 때는 심지어 그들의 농지를 매매 계약서 없이 수용해버렸다." / "토지 자본가들은 계속해서 자유민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를 고용했는데, 후자는 전자와 달리 군복무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자유민 무산계급은 노예와 비슷한 수준의 가난으로 내몰렸다. 자본가들은 계속해서 품삯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저렴한 시킬리아 노예 곡물을 들여와 수도 로마의 시장에서 이탈리아 자유민 곡물을 밀어냈고, 결국 이탈리아 자유민 곡물은 이탈리아 반도 전체에서 가격 하락을 겪었다." / "이런 식으로 지속된다면, 시민체는 토지 소유자와 노예로 해체될 판이었다."

     

    ― 위의 책, 같은 장 열 번째 절, '이탈리아 농부들'

     

     

    2020.09.01.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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