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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Römische Geschichte) 제2책 서평몸젠의 로마사 2020. 7. 28. 09:14
"한 사람의 통치 아래 이탈리아와 시킬리아의 희랍인들이 연합하자 이에 대한 즉각적 반응으로 그들의 경쟁자들 또한 하나로 뭉쳤다. 카르타고와 로마가 그들의 옛 무역 협정을 퓌로스에 대항한 군사동맹으로 바꾼 것이다(기원전 279년). 이 동맹협정을 통해 양측은 퓌로스가 로마나 카르타고 영토를 침공하는 경우 공격받지 않은 쪽은 자신의 영토가 공격당할 때처럼 원군을 준비하고 그 비용도 자채 부담하기로 했다. 또한 이런 상황이 되면 카르타고는 수송을 맡고 로마에 해군을 지원하기로 했으되 선원들이 상륙해 전투에 참여할 필요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양국은 퓌로스와 독자적인 강화를 체결하지 않기로 서약했다. 동맹협정을 통해 로마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퓌로스를 타렌툼에서 떠나보내고 타렌툼을 공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는바, 이를 위해서는 카르타고 해군과의 연합 작전이 불가피했다. 한편 카르타고 측은 쉬라쿠사이에 대한 그들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퓌로스 왕을 이탈리아에 붙들어 두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따라서 로마와 카르타고 양국의 주된 관심은 우선 이탈리아와 시킬리아 해역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제2책 (한국어판 제2권), 제7장 〈퓌로스 전쟁과 이탈리아 통일〉 열여덟번째 절 '로마와 카르타고의 동맹'.
독서 기록
조금 전, 《몸젠의 로마사》 제2책(Bd. 1, Buch 2, 1902)에 해당하는 한국어판 제2권을 마저 읽었다. 초판 1쇄는 2014년 2월 28일에 발행된 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종이책은 2015년 2월 17일 발행된 초판 2쇄이다.
이 책을 구매한 것은 지난 2월 2일 일요일이었다. 7월 28일 오늘에서야 이 책을 마저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집중적으로 읽은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한 달이면 다 읽을 수 있었다. 3월 6일 금요일에 나는 《몸젠의 로마사》 제2권을 그 마지막 장인 제2책 제9장 〈예술과 학문〉의 열세번째 절 '소송 방식서 목록'까지 읽었다. 3월 5일 목요일에는 이미 《몸젠의 로마사》 제3권을 구매했다.
당시에는 제2권을 마저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제2권의 마지막 장 〈예술과 학문〉에서 다루는 라티움과 에트루리아 민족의 문화적 발전 과정이 내게 그렇게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로마-카르타고 전쟁에 대해 다루는 제3권이 너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제3권은 페니키아인들과 그들이 건설한 고대의 위대한 도시 카르타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한니발 전쟁'으로 끝난다.
그렇게 《몸젠의 로마사》 한국어판 중에서 나는 제3권을 두번째로 구매했고,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그 이후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제1권을 빌렸는데,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제5권을 구매했다. 제4권은 아직 구매하지도 않았다. 처음 구매한 제2권은 이제야 다 읽은 것이다. 나는 책을 한 번 구매한 뒤로는 그 책에 대해 애착을 가지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순서대로 읽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지만, 책을 구매할 때도 정해진 순서를 따르지는 않는 편이다. (한국사를 공부할 때 꼭 청동기 시대나 고조선부터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철기 시대와 고구려가 더 재미있을 것 같으면 거기에서부터 시작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퓌로스 전쟁까지의 상황
맨 위에 인용한 글은 《몸젠의 로마사》 제2책에서 다루는 시대에서 하나의 변곡점이 되는 시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그 글은 로마-카르타고 전쟁 이전 로마와 카르타고가 서로 협력해야만 했던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에, 제3책의 내용과도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제2책의 첫 세 개 장은 왕정 철폐 이후 로마의 정치 체제가 변동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4장부터 제7장까지는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복속시키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앞의 것은 정치사에 속하고, 뒤의 것은 전쟁사에 속한다. 정치사도 물론 흥미롭지만, 제3책에서 로마-카르타고 전쟁에 대해 읽기 전 로마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었던 나는 전쟁사 부분이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전쟁사는 또한 네 개 장으로 나뉘는데, 각각 제4장 〈에트루리아 패권의 몰락과 켈트족〉, 제5장 〈로마에 의한 라티움과 캄파니아 복속〉, 제6장 〈로마의 이탈리아 전쟁〉, 제7장 〈퓌로스 전쟁과 이탈리아 통일〉이다.
제6장에서 이미 로마가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공동체를 복속시키는 과정을 다룬다. 제6장 〈로마의 이탈리아 전쟁〉이 끝날 때,
"로마는 이미 단순히 일등 국가가 아닌 반도 전체를 지배하는 최강 국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반도의 모든 도시 공동체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반도 남부 타렌툼 만 해안에 위치한 희랍계 도시 공동체인 타렌툼은 로마와 조약을 체결하고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들은 로마 함대가 자신들의 영역을 지나치게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고, 급기야는 로마 함대를 습격한다. 로마 함대는 장군과 다섯 척의 함선, 모든 선원을 잃게 된다. 결국 타렌툼은 로마와의 전쟁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지만, 곧 타렌툼 시민군은 로마에 대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음이 밝혀졌다. 결국 타렌툼은 이탈리아 반도에 대해 큰 야심을 가지고 있던 희랍의 한 군주, 에페이로스의 왕 퓌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하여 '로마-퓌로스 전쟁'이 시작되고, 이를 제7장 〈퓌로스 전쟁과 이탈리아 통일〉에서 다루고 있다.
당시 지중해 세계는 대략적으로 라티움인들의 로마, 페니키아인들의 카르타고, 그리고 희랍인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세력을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로마가 너무도 빠른 속도로 이탈리아 전체를 집어삼키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이탈리아 반도의 일부를 생활권으로 여기고 있던 희랍인들은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항의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카르타고는 희랍인들이 아닌 로마와 군사동맹을 맺게 되었다.
카르타고의 입장에서 로마는 전통적으로 평화로운 무역 협정을 유지했던 관게이고, 이탈리아 반도에서 로마의 패권이 성장하는 것이 카르타고에게 당장 큰 위협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용된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오히려 시킬리아 섬에 거주하는 희랍인 공동체들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카르타고의 해상 패권이 더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로마와 카르타고는 서로 동맹을 맺고 희랍 세력을 견제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는 희랍 세력이 쇠퇴하고,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최종 결전을 벌이게 된다. 《몸젠의 로마사》 제3책(한국어판 제3권, 제4권)과 제4책(한국어판 제5권)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이 다루어진다.
역사학자에 의한 문학적 성취의 위대함
《몸젠의 로마사》는 1902년, 독일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품의 장르는 문학이 아니라 역사학이지만, 문학적으로도 위대한 성취를 이룩한 작품이라는 것이 인정된 것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구매할 때 노벨 문학상 수상 여부 따위는 알지도 못했다. 나는 그냥 그 책 전체가 엄청난 학문적 성취라는 것을 알아보았을 뿐이다. 내가 오히려 픽션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도, 픽션보다는 사실과 진실을 추구하는 활동에서 언제나 더 큰 신비와 경이로움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기원전 279년 카르타고와 로마가 군사동맹을 맺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분석이 담담한 필체로 쓰여 있다. 그런 식으로 당시 역사적 인물들과 도시 공동체들의 인식과 관점, 판단과 행동이 계속해서 서술된다. 마치 오늘날의 정치와 시사에 대한 분석 기사를 읽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몸젠은 하나의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럴 때, 자신이 지금까지 서술했던 것을 요약하며, 역사학자의 통찰력과 역사의 심오함을 드러내는 때가 있다. 예컨대, 《몸젠의 로마사》 제4책(한국어판 제5권)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로마는 복속민들에게 그들의 저주스러운 운명을 한꺼번에 통보하지 않았다."
이 문장 자체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로마가 히스파니아 지방의 원주민인 루시타니아인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을 몇 쪽에 걸쳐 몰입해서 읽고, 로마가 루시타니아인들에게 저지른 비겁한 짓들을 상세하게 알게 된 다음에, 위의 문장을 읽게 된다. 그러면 갑자기, 그 문장을 통해 역사가 문학이 되는 것이다. 문학이 된 역사는 다시, 그 모든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의 장구한 시간으로 인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책이 진정 위대한 역사학적, 문학적 결실임을 깨닫게 된다.
2020.07.28.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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