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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노르드어, 영어 'be' 동사의 기원이 되다?
    게르만어파 언어 비교 2020. 8. 22. 14:28

    "여기서 잠시 티르키르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는 젊었을 때 독일 해안에서 포로로 잡혀 노르웨이 카우팡에 있는 노예시장으로 끌려갔다. 당시 동쪽으로 여행을 떠난 내 할아버지 붉은머리 에이리크가 그를 사들였는데, 알고 보니 기막히게 훌륭한 거래였다. 티르키르는 지칠 줄 모르는 일꾼으로서 할아버지에게 몹시 충성스러웠다. 그는 북구 언어인 돈스크 퉁아(dǫnsk tunga)가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와 동떨어진 말이 아니란 걸 깨닫고 금세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목청에서 새어 나오는 거센 억양은 끝내 버리지 못했고, 흥분하거나 화를 낼 때면 자기 나라말로 지껄이곤 했다."

     

    팀 세버린 장편소설, 《바이킹: 오딘의 후예》(Viking: Odinn's Child), 제4장, 두번째 절.

     

     

    팀 세버린의 소설에서 북구인들과 함께 사는 독일인 티르키르는 처음에는 노예 신분이었으나, 모국어와 비슷한 북구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북구인들의 '옛 신앙'과 신화에 해박하여 북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인 토르길스에게 '엣 신앙'과 룬 문자를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하며, 토르길스는 훗날 그를 오딘이 변장한 모습이거나 오딘이 보낸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위 그림은 노르드 신화의 주요 신인 오딘을 묘사한 것이다.   

     

     

    영어 'be' 동사와 독일어 'sein' 동사 비교

     

    영어를 제1외국어로서 처음 배울 때 가장 핵심적인 문법적 요소는 동사였다. 동사의 형태가 주어의 수와 인칭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한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특징이었기 때문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무엇보다도 'be' 동사의 변화 양상이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영어의 동사 중에서 이 정도로 불규칙하게 변화하는 다른 동사는 없다.

     

    현재형 문장에서 'be' 동사는 주어가 단수일 때 '(I) am', '(it) is' 등으로 변화하고, 주어가 복수일 때 '(we, you, they) are'로 변화한다. 과거형 문장에서는 'am''is' 대신 '(I, it) was'를 쓰고, 'are' 대신 '(we, you, they) were'을 쓴다. 이것들은 모두 'be' 동사가 한정 동사 역할을 할 때의 형태 변화이다. 즉 표준 영어에서 'be' 동사가 한정 동사 역할을 하는 경우, 그 변화된 형태는 기본 형태와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 동사의 기본 형태가 'be'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본 형태는 한정 동사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에만 나타난다. 'it can be'와 같이 조동사가 한정 동사 역할을 하거나, 부정사 'to be'나 동명사 'being' 등으로 쓰일 때가 그렇다. 그나마 과거분사인 'been'이 기본 형태와 닮았다.

     

    이와 같이 불규칙한 변화 양상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영어의 수많은 동사 중에서 'be' 동사만이 가지는 특수한 역할과 지위가 있다보니, 그 불규칙한 변화도 'be' 동사만의 특수성으로서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단어를 쓰면 쓸수록 복잡한 형태 변화도 당연할 정도로 익숙해진다.

     

    영어의 'be' 동사를 배울 때 내가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의문은 나중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되었지만, 독일어'sein' 동사를 배우면서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독일어의 'sein' 동사와 영어의 'be' 동사를 비교해보자.

     

     

    독일어 초기 근대 영어 고대 노르드어
    (ich) bin/war (I) am/was (ek) em/var
    (du) bist/warst (thou) art/wast (þú) ert/vart
    (er, sie, es) ist/war (he, she, it) is/was (han, hón, þat) es/var
    (wir) sind/waren (we) are/were (vér) erum/várum
    (ihr) seid/wart (ye, you) are/were (ér) eruð/váruð
    (sie) sind/waren (they) are/were (þeir, þær, þau) eru/váru
    sein be vera
    gewesen been verit

     

     

    독일어 'sein' 동사의 1인칭/3인칭 단수 과거형인 '(ich, es) war'는 모두 현대 영어의 '(I, it) was'에 대응한다. 1인칭/3인칭 복수 과거형인 '(wir, sie) waren', 2인칭 복수 과거형 '(ihr) wart'은 모두 영어의 '(we, you, they) were'에 대응한다. 독일어의 '(es) ist'와 영어의 '(it) is'도 닮았다. 하지만 현대 영어와 독일어를 비교했을 때, 모양과 발음이 닮은 것은 이게 전부이다.

     

    전반적인 복잡성을 비교하자면, 영어가 더 단순하다. 독일어에서는 2인칭인 '(ihr) seid/wart'가 1인칭/3인칭 '(wir, sie) sind/waren'과 구분된다. 반면 영어의 복수형은 모두 '(we, you, they) are/were'로 통일되었다. 또한 오늘날 영어의 2인칭 단수형 대명사는 원래 2인칭 복수형 대명사였던 'you'와 같아졌고, 그에 따르는 동사는 문법적으로도 복수형과 같은 방식으로 변화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어와 독일어의 닮은 점을 더 찾을 수 있다. 1450년부터 1650년 무렵의 초기 근대 영어(Early Modern English)에는 2인칭 단수 대명사 'thou'가 존재하여 복수형 'ye' 또는 'you'와는 구분되었고, 이에 대한 'be' 동사의 현재형은 '(thou) art', 과거형은 '(thou) wast'이었다. 초기 근대 영어의 2인칭 단수 대명사 'thou'는 독일어의 'du'와 동계이고, '(thou) wast' 또한 독일어 '(du) warst'와 닮았다는 점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2인칭 복수 대명사 'ye'는 독일어의 'ihr'와 동계이다. 원래는 'ye'가 주격(nominative)이었고 'you'는 그 목적격(objective)으로 독일어의 'euch'와 동계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의 'du'와 마찬가지로 초기 근대 영어의 'thou'는 덜 공손한 표현으로 여겨졌고, 단수를 의미할 때도 2인칭 복수 대명사 주격 'ye' 또는 목적격 'you'를 씀으로써 공손함을 나타낼 수 있었다. 점차 'thou'는 덜 공손한 정도가 아니라 무례하거나 부적절한 표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복수형이 단수형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 독일어와 프랑스어에서도 초기 근대 영어에서와 마찬가지로 덜 공손하게 쓰는 본래의 2인칭 단수형과 더 공손하게 쓰는 다른 대명사를 구분하는데, 영어처럼 더 공손한 표현이 덜 공손한 표현을 대체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독일어에서는 대화 상대를 2인칭 단수형 대신 3인칭 복수형인 'Sie (sind)'를 사용하여 공손하게 지칭하는데, 이 경우 'S'를 대문자로 쓴다.

     

    이제 닮지 않은 점들을 찾아보자. 독일어의 '(ich) bin', '(du) bist'는 영어의 '(I) am'이나 초기 근대 영어의 '(thou) art'와 닮지 않았다. 독일어의 '(wir, sie) sind', '(ihr) seid' 또한 영어의 '(we, you, they) are'과 닮지 않았다.

     

    영어, 독일어와 마찬가지로 서게르만어군(West Germanic Languages)에 속하는 네덜란드어의 경우 'zijn' 동사는 1인칭 '(Ik) ben', 2인칭 '(jij) bent', 복수형 'zijn'과 같은 형태를 가지는데, 모두 독일어와 닮았다. 영어에서도 'be' 동사의 기본 형태가 'be'이고 과거분사가 'been'인 것으로 보아, 독일어 'sein'이나 네덜란드어 'zijn'의 형태 변화가 서게르만어군 언어의 공통 유산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서게르만어군 언어의 공통 유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어의 '(I) am''(we, you, they) are', 초기 근대 영어의 '(thou) art' 등은 왜 이런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일까?

     

     

    고대 노르드어 'vera' 동사와 영어 'be' 동사 비교

     

    이제 영어와 고대 노르드어(Old Norse), 즉 돈스크 퉁아(dǫnsk tunga)를 비교해보자. 고대 노르드어는 북게르만어군(North Germanic Languages)에 속하는 언어들의 공통 조어로서, 서게르만어군에 속하는 독일어나 영어의 직계 조어는 아니다. 하지만 영어에서 서게르만어군에 속하는 다른 언어보다 고대 노르드어를 더 닮은 것처럼 보이는 특징들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영어 'be' 동사와 고대 노르드어 'vera' 동사의 관계가 그렇다.

     

    'be' 동사의 1인칭 현재형 '(I) am'고대 노르드어 'vera' 동사 '(ek) em'과 닮았다. 초기 근대 영어에 존재했던 2인칭 형태인 '(thou) art/wast' 역시 고대 노르드어의 '(þú) ert/vast'와 매우 닮았다.

     

    또한 고대 노르드어에서 'vera' 동사의 3인칭 복수형인 '(þeir, þær, þau) eru/váru'는 영어의 '(they) are/were'과 닮았다. 'be' 동사의 1인칭/2인칭/3인칭 복수형인 '(we, you, they) are/were'처럼 통일되어 있지는 않지만, 각각 1인칭, 2인칭, 3인칭 복수형인 '(vér) erum/várum', '(ér) eruð/váruð', '(þeir, þær, þau) eru/váru'가 서로 조금씩 닮기도 했다. 3인칭 복수형을 기준으로 1인칭은 '-m', 2인칭은 '-ð'라는 어미가 붙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유사성은 영어의 'be' 동사와 고대 노르드어의 'vera' 동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면서 독일어와는 공통되지 않은 점이다. 독일어의 'sein' 동사와는 닮지 않은 형태인 '(I) am', '(thou) art', '(we, you, they) are' 등을 고대 노르드어와 비교해서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와 인칭에 따른 'be' 동사의 모든 형태가 고대 노르드어의 'vera' 동사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로 서로 비슷하다.

     

    그렇다면 옛 영어(Old English)가 서게르만어군 공통조어로부터 물려받은 어휘 중 일부가 북게르만어군 공통조어인 고대 노르드어의 어휘로 대체된 것일까? 아니면 이미 두 언어에서 어느 정도 비슷했던 어휘가 더 비슷하게 수렴한 것일까?

     

    위의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이 되지는 않겠지만, 다음과 같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두 가지 역사적 배경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첫째, 영어는 북게르만어파의 기원이 된 고대 노르드어와 밀접하게 접촉하며 영향을 받았다.

    둘째, 영어와 독일어는 서로 분리된 이후 각각의 독자적인 변화를 거치며 다르게 진화했다.

     

     

    한편, 고대 노르드어의 3인칭 복수형 대명사는 남성형 'þeir', 여성형 'þær', 마지막으로 중성형 'þau'가 있다. 현대 아이슬란드어에서도 같은 형태로 쓰이고 그 발음은 각각 [θeiːr], [θaiːr], [θøɪː]이다. 이것들은 내게 영어의 'they'[ðeɪ]와 거의 비슷하게 들리는데, 실제로 이것은 1200년대에 고대 노르드어로부터 차용된 중세 영어(Middle English)의 'þei'로부터 온 말이다. 물론 3인칭 복수형 대명사를 남성, 여성, 중성으로 구별하는 고대 노르드어의 문법은 옛 영어에 존재하지 않았고 중세 영어에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이것들은 독일어의 3인칭 복수형 대명사 'sie'[ziː]와는 꽤 다르게 보인다. 옛 고지 독일어(Old High German)에는 3인칭 복수 대명사 남성형 'sie', 여성형 'sio', 중성형 'siu'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들도 영어나 고대 노르드어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닮은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영어의 3인칭 단수 대명사 여성형 'she' 독일어의 'sie'를 닮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대 노르드어 'hón', 덴마크어 'hun', 스웨덴어 'hon', 아이슬란드어 'hún'과 동계이다. 오히려 독일어의 'sie'는 옛 영어에서 '저것'(that one)에 해당하는 여성형 대명사 'sēo'와 동계이고, 이것은 영어의 'she'보다는 'that'과 더 관련이 있다.

     

     

    게르만어파 공통조어의 'wesaną' 동사 과거형

     

    물론 세 언어는 모두 게르만어파 공통조어의 후손이기 때문에, 세 언어가 모두 닮은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영어 'be' 동사의 1인칭/3인칭 단수 과거형인 'was'는 독일어의 'war'[vaːɐ̯]를 닮기도 했지만 고대 노르드어의 'var'도 닮았다.

     

    사실 고대 노르드어에서 'var'의 더 오래된 형태는 'vas'였다. 동시에 기본형인 'vera'의 더 오래된 형태는 'vesa'였다.

     

    고대 노르드어에서는 '-s' '-r'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났고, 영어에서도 '-s'로 끝나는 단어가 독일어에서는 '-r'로 끝난다. 한국인들이 보기에  '-s' '-r'은 서로 비슷한 점이 없는 것 같지만, 게르만어파 언어에서는 이 두 자음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음이 이와 같은 사례들에서 드러난다.

     

    영어에서 'you'가 원래 2인칭 복수 대명사였음을 유의한다면, 영어에서 '(I, he, she, it) was'의 기본적인 의미는 단수 과거형이고 '(we, you, they) were'의 기본적인 의미는 복수 과거형이다. 잘 생각해보면, '-s' '-r'로 바꾸고 동시에 모음을 바꾸면 단수형이 복수형이 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단수 현재형 '(he, she, it) is'에서도 '-s' '-r'로 바꾸고 동시에 모음을 바꾸어 복수 현재형 '(they) are'을 만들 수 있다.

     

    독일어의 경우, 복수 과거형이 '(wir, sie) waren''(ihr) wart'인데, 과거분사 형태는 'gewesen'이다. 이 경우에는 과거형에 '-r-'이 들어있고 과거분사에 '-s-'가 들어있다. 사실 복수 현재형인 '(wir, sie) sind' '(ihr) seid'에도 '-s-' 들어있었는데 다만 그 앞부분이 탈락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현상을 검토한 결과, 언어학자들은 게르만어파 공통조어에 'wesaną' 동사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wesaną' 동사의 1인칭/3인칭 단수 과거형은 'was'였고, 2인칭 단수 과거형은 'wast'였다. 독일어와 고대 노르드어에서 모두 '-s' '-r'로 바뀌었고 독일어에서는 '-r'이 더 첨가되기도 했지만, 영어와 고대 노르드어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형태는 유지되었다. 영어의 'w-'와 고대 노르드어의 'v-', 독일어의 'w-' 등은 그 기원이 같고 서로 유사한 발음이라는 점이 명백하기 때문에 그 차이는 무시하도록 하겠다.

     

    1인칭, 2인칭, 3인칭 복수 과거형은 각각 'wēzum', 'wēzud', 'wēzun'였고 모두 구별되었다. 여기에서 'z'는 오늘날 독일어의 's'와 유사한 자음으로, 앞서 말한 것처럼 'r' 쉽게 바뀌고는 했다. 고대 노르드어의 3인칭 복수 과거형인 '(þeir, þær, þau) váru'에서는 '-n'이 탈락했지만, 여전히 어미가 탈락하지 않은 1인칭 및 2인칭과 구별되었다. 독일어의 1인칭 복수 과거형인 '(wir) waren'에서는 '-m'이 비슷한 자음인 '-n'으로 바뀌어서 3인칭 '(sie) waren'과 같은 모양을 가지게 되었다. 2인칭의 '-d'는 고대 노르드어에서는 약한 음인 '-ð'가 되었고 독일어에서는 강한 음인 '-t'가 되었다. 영어에서는 모든 어미가 탈락하여 1인칭, 2인칭, 3인칭 복수 과거형이 'were'로 통일되었는데, 아마 고대 노르드어의 'váru' 형태를 기준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어, 독일어, 고대 노르드어 등의 게르만어파 언어에서 아직도 이들 단어들이 어느 정도 서로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고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게르만어파 공통조어의 형태를 쉽게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과거형의 경우에는 말이다.

     

     

    게르만어파 공통조어의 'wesaną' 동사 현재형

     

    한편, 'wesaną' 동사의 1인칭 단수 현재형은 'immi'였을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영어의 '(I) am', 고대 노르드어의 '(ek) em'과는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고트어(Gothic)에도 'im'이라는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이 또다른 근거가 된다. 반면 이것은 독일어의 1인칭 단수 현재형 '(ich) bin'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ich) bin', '(du) bist' 등의 기원은 'wesaną' 동사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이어서 설명하겠다.

     

    'wesaną' 동사의 1인칭, 2인칭 복수 현재형 'izum','izud'는 고대 노르드어의 1인칭, 2인칭 복수 현재형 '(vér) erum', '(ér) eruð'를 닮았다. 한편, 'wesaną' 동사의 3인칭 복수 현재형은 'sindi'였다고 한다. 이것은 독일어 'sein' 동사의 복수 현재형인 '(wir, sie) sind'  '(ihr) seid'와 닮았다. 옛 영어의 'wesan' 동사에도 모든 인칭에 대한 복수 현재형 'sind'가 있었다. 이와 같이 서게르만어군 언어의 형태를 반영하기 위해 언어학자들이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 같다.

     

    하지만 'wesaną' 동사의 복수 현재형이 각각 'izum', 'izud', 'sindi'였다는 결론은 조금 이상하다. 분명 같은 동사의 복수 과거형은 각각 'wēzum', 'wēzud', 'wēzun'이고, '-m', '-d', '-n' 어미가 각각 1인칭, 2인칭, 3인칭에 적용된다. 고대 노르드어에서는 '-d''-ð'로 바뀌었고 '-n'이 탈락되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규칙이 과거형 뿐만 아니라 현재형에도 적용된다. 고대 노르드어에서 복수 현재형과 복수 과거형의 모든 인칭에 적용되는 규칙게르만어파 공통조어에서는 복수 현재형 3인칭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란 말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wesaną' 동사의 3인칭 복수 현재형은 'izun'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면 고대 노르드어의 3인칭 복수 현재형 '(þeir, þær, þau) eru' 역시 과거형 'váru'과 마찬가지로 '-n'이 탈락한 것으로 쉽게 설명될 것이다. 하지만 언어학자들은 고대 노르드어에서 발견되는 일관된 규칙을 게르만어파 공통조어에는 불완전하게 적용하고, 그 대신 서게르만어군 언어의 특징을 반영하는 쪽을 택했다. 즉, 서게르만어군 공통조어에서는 복수 현재형 'izum', 'izud', 'sindi'이 엣 고지 독일어의 'sum', 'sīt', 'sint'와 같이 계승되고, 북게르만어군 공통조어에서는 'erum', 'eruð', 'eru'와 같이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옛 고지 독일어에서 세 형태가 닮은 모양이고, 고대 노르드어에서도 세 형태가 닮은 모양인데, 복원된 게르만어파 공통조어에서는 세 형태가 닮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어쨌든 이것이 Wiktionary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였다. 이에 따르면 고대 노르만어에서는 'sindi'를 계승하여, 내가 보기에는 'izun'을 계승한 것처럼 보이는 3인칭 복수형 '(þeir, þær, þau) eru'이 생겨났다. 이것은 복수형의 인칭을 구별하지 않았던 영어에서 모든 인칭 복수형 '(we, you, they) are'이 되었다. 그리고 서게르만어군 공통조어와 더 비슷한 형태인 '(we, you, they) sind'은 점차 그에 밀려나서 사라졌다.

     

     

    서게르만어군 공통조어의 'beuną' 동사 

     

    독일어의 단수 현재형 '(ich) bin', '(du) bist', 네덜란드어의 단수 현재형 1인칭 'ben'과 2인칭 'bent' 등은 'wesaną' 동사와는 다른 기원을 가지며, 그 복원된 형태는 'beuną'이다. 'wesaną' 동사의 기본적인 의미가 '-가 있다, -이다, -로 남다'라면, 'beuną' 동사의 기본적인 의미는 '-가 되다'이다. 놀랍게도 서게르만어군 공통조어에서 'beuną' 동사는 'wesaną' 동사의 현재형 부분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러한 현상은 서게르만어군 언어에서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서게르만어군에 속하는 중세 영어에도 'am' 대신 쓸 수 있는 'be'가 있었고, 2인칭 단수 'art' 대신 쓸 수 있는 'bist'가 있었으며, 심지어 'is' 대신 쓸 수 있는 'bith', 그리고 복수형 'are' 대신 쓸 수 있는 'beth'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 형태는 모두 현재형으로만 쓰였고, 게르만어파 공통조어의 'beuną' 동사를 복원하기 위한 근거가 된다. 이때, 'beuną' 동사의 직계 후손 형태들인 'be', 'bist', 'bith', 'beth' 등은 고대 노르드어와 닮은 형태들인 'am', 'art', 'is', 'are' 등과 경쟁하다가 밀려나서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 고대 노르드어 출신의 'are'은 자신과 같은 'wesaną' 기원을 가지는 서게르만어군 출신의 'sind'를 대체했고, 동시에 자신과 다른 'beuną' 기원을 가지지만 역시 서게르만어군 출신인 'beth'까지도 밀어낸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중세 영어가 다른 서게르만어군 언어들보다는 고대 노르드어와 늘 더 가까이 교류했기 때문이라고 대략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beuną' 동사가 'wesaną' 동사의 현재형 변화를 대체하는 서게르만어군 언어의 특징적인 변화는 영어에서는 거의 살아남지 못했고, 영어의 'be' 동사는 고대 노르드어의 'vera' 동사를 더 닮은 방식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beuną' 동사의 직계 후손인 'be'는 기본 형태로 살아남았고, 'been'은 과거분사 형태로 살아남았다. 영어가 고대 노르드어와 접촉하며 교류했다고는 해도, 'vera' 동사의 기본 형태와 과거분사 형태인 'verit'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기본 형태와 과거분사 형태는 다른 형태에 비해 문법적으로 더 복잡한 구조의 문장에서 나타나고, 중세 영어 화자들이 이것을 들을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영어의 직계 조어가 서게르만어군 언어이며 단지 북게르만어군 언어의 어휘를 광범위하게 차용했을 뿐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로 간주될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나는 겨우 영어의 'be' 동사 하나의 기원을 추적했을 뿐이다. 그 결과 'be' 동사의 다양한 형태들은 무려 세 가지나 되는 서로 다른 기원이 서로 경쟁한 끝에 오늘날과 같이 그 중 두 가지 기원이 남은 것임을 밝혔다. 그 중 완전히 사라진 것은 'wesaną' 동사의 서게르만어군 형태였고, 광범위하게 정착된 것은 북게르만어군 형태였으며, 'beuną' 동사는 제한적으로만 살아남았다.

     

    물론 'be' 동사 이외에도 고대 노르드어로부터 영어에 차용된 수많은 단어들이 존재하고, 심지어 문법적 특징까지 서게르만어군 언어보다 북게르만어군 언어와 비슷하게 변화하기도 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이와 같은 언어학적 탐구를 계속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2020.08.29.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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